제239차 목쎄가 막을 내렸습니다.
아니, 사실은 이제 막을 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프닝을 준비하고 쎄미나 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수고가 있었는지요.
기도로, 격려로, 기대로 함께 하신 참여자 분들과 관계자들, 그리고 수정교회 성도들의 
여러 헌신이 있었음을 생각할 때, 가슴이 찡 하네요. 
수정교회 공식 사진 담당으로부터 시간 헌신의 전화를 받고, 즉시, 예스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락다운이라는 상황 탓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3주간의 특새도 온전히 가능하게 만들었구요,
암울한 터널을 지나면서 오히려 한 마음이 되어준 수정공동체 가족들, 지나며 보니,
정말, 감사가 판을 친 시간이었네요. 
언제인가 목장에서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요,
"행복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줍는 거야"   
감사도 그런 것 같아요.  
목사님, 사모님, 
그동안, 많은 꺼리들을 흘려 놓으셨어요. 기회를 주고, 기다리고... 두 분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자신을 투명하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때론, 약점까지도 숨기려 하지 않았고, 기꺼이 제물도 되셨고, 그러셨어요.
잘못이라며 인정할 때도 있었어요. 
처음의 신뢰는 이렇게하여 생겼다고 봅니다만... 하하.
소실적에 한 성깔 있었다고 아무리 우겨도, 지금은 그렇지 않게 보이는 이유가 뭘까요.
그 표현이 단순한 간증의 맛을 살리기 위한 미사어구가 아님을 알기 때문 일겁니다.
이미, 신뢰가 쌓였기에 향기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어느 목회자께서 저에게 이런 물음을 주셨어요.
" 평신도 입장에서, 목사를 어떨 때 신뢰할까요? " 
몇가지 얘길 하긴 했지만, 마음 한 켠은 무거웠습니다.
목회자와 성도간에 신뢰가 없다면 어찌 되는건가? 만일 그렇다면, 그건 누가 만든 장벽인가?
각설하고, 한가지 물습니다.
" 어쩌면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으세요?"

오늘 한 통의 편지를 써내려 가며, 또 하나의 감사와 행복을 줍고 퍼 나릅니다.
세상이 분주하고, 각박하고, 이해 타산으로 점철되어간다 할지라도, 
신뢰 가운데 생기는 해프닝은 우리를 웃음으로, 풍요로, 부자로 만들어 줍니다.
10월로 접어든 2021년, 의미있는 시간이  되시길 기도할께요.